[영화]The Man with the Iron Heart(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2017)

꿈을꾸는 파랑새

오늘은 영화인 he Man with the Iron Heart(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에 대해 글을 적어보겠습니다. 해당 영화는 원작 로랑 비네(책)
각색 데이빗 파, 오드리 디완,세드릭 히메네즈 감독 세드릭 히메네즈 이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유인원 작전)을 다루고 있지만, 해당 영화는 기존의 새벽의 7인, Anthropoid(앤트로포이드)와는 다르게 일단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중심으로 영화는 진행되며 영화 중반부에 되어서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하기 위해서 투입이 되는 특수부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입니다. 이번에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 대해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나치 독일의 국가보안성(Reichssicherheitshauptamt[)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며 하인리히 뮐러와 함께 그 유명한 게슈타포의 악명을 만든 장본인으로 하이드리히가 나치당에 들어오고 죽을 때까지 나치당이 관련된 사건에는 모두 하이드리히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사실상 히믈러 다음으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SS 이병에서 상급집단지도자까지 올라간 사병 출신 장성이며 1904년 3월 7일 독일 동부의 할레안데어잘레(Halle an der Saale)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작곡가이자 오페라 가수(테너)인 리하르트 브루노 하이드리히(Richard Bruno Heydrich), 어머니는 작센 왕국의 드레스덴 궁정의 궁정 고문관을 맡은 음악 연구자 게오르크 오이겐 크란츠 교수(Georg Eugen Krantz)의 딸 엘리자베트 아나 마리아 아말리아 크란츠(Elisabeth Anna Maria Amalia Krantz)입니다.하이드리히는 학창시절 때부터 유대인이라면서 왕따를 당해왔고 아버지가 유대인들과 절친이었고 집으로 랍비들까지 데려와 사이좋게 이야기도 나누고 술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이나 아버지는 극구 부인했고 사업이나

여러 인맥 때문에 유대인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면 해군 사관학교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데 1922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중위까지 진급했으나 1931년에 모종의 이유로 쫓겨났는데 소문에 의하면 처녀를 강간했기 때문이라고 하나 하이드리히가 훗날 이 사건을 은폐했기 때문에 진상은 알 수 없는데 일부에서는 약혼녀가 있음에도 다른 처녀와 내연관계를 가진 것이 발각되어 여성의 명예와 장교의 품위를 훼손했다. 는 명목으로 퇴역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여성의 명예와 장교의 품위 위반으로 쫓겨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처녀(여성)분의 아버지가 당시 해군총사령관이던 에리히 레더 상급대장과 막역한 친구였기 때문에 강제로 퇴역하였다고 한다고 돼 있으면 해당 영화에서도 이런 진행를 따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레더 제독은 1928년 10월 1일 한스 젠커 상급대장에 이어 총사령관에 취임했으므로 강제 예편의 발단이 되는 사건은 최소한 이 이후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하이드리히는 리나 폰 오스텐(Lina von Osten 1911년 6월14일~1985년 8월14일)[과 약혼한 상태였으며 하급귀족 출신인 리나는 발트 해 연안의 페마른 섬 출신의 마을 학교 교장의 딸로, 엷은 황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이드리히의 불명예스러운 행동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하며. 리나의 동생 위르겐은 1928년 히틀러의 연설을 들은 뒤 히틀러에게 완전히 빠져들었고. 리나 자신도 나치당 여성단체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하이드리히의 약혼녀 리나 폰 오스텐은 하이드리히에게 SS에 입대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당시 SS는 히틀러의 친위 경호대로써 약 1만 명의 대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하이드리히는 1931년 27세의 하이드리히는 나치당에 가입하고 SS의 대원이 되었고 하이드리히는 보다 높은 직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SS의 첩보 부서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SS장관 하인리히 힘러에게 발탁되었으며 하이드리히가 힘러의 부관으로 임명된 이유는 특히 하이드리히가 장신의 금발에 탄탄한 체구를 가져서 겉으로는 게르만족의 전형으로 보인다는 점에 힘러가 완전히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하이드리히는 자신의 집안을 통해서 당시 친위대 상급대령 카를 폰 에버슈타인(Karl von Eberstein) 남작을 알게 되었고, 힘러의 측근이었던 에버슈타인은 하이드리히와 힘러의 만남을 주선했다.

힘러는 하이드리히에게 단 20분을 주고 친위대 정보부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써보라고 했고 하이드리히는 자신이 해군 정보 세미나에서 얻은 지식과 오래전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내면서 대부분 영국산 스릴러 소설을 읽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추가해서 신빙성을 더하려고 적절하고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군 전문 용어의 실례를 포함했고 그 결과 힘러는 그것을 검토하고 만족스럽다고 평했으며 이를 계기로 하이드리히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힘러로부터 고향 함부르크를 떠나 뮌헨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하이드리히는 기존의 친위대 기록에서 자료를 뽑아 독재 권력의 기반인 방대한 색인 카드를 만들었고 그 속에는 동료 친위대원들에 대한 세세한 사항들을 비롯해 정권에 미약하게나마 위협을 줄 수 있는 모든 인물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며 해당 결과는 친위대 보안대(SD)로 이어졌으며 보안대는 하인리히 힘러의 보안 기관이었지만 실제로는 하이드리히의 지휘하에 있었고 그 후 초고속 진급을 해서 SS 대위로서 보안방첩국(Sicherheitsdienst, SD)의 초대 부장이 되었으며 하이드리히의 보안국은 나치가 벌인 숙청과 정치공작을 진두지휘하며 은폐공작을 벌였고 나치 당내 온건파(좌파)와 돌격대를 숙청한 장검의 밤(Nacht der langen Messer)이나 폴란드 침공을 위한 증거조작(통조림: Konserve 작전), 수정의 밤(Kristallnacht) 등이 대표적인 하이드리히의 공작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장군의 약점을 잡으려고 해당 장군이 아내 몰래 어린 여자와 성매매를 한다는 것을 알고 해당 성매매 현장을 몰카로 촬영해서 나중에 유대인 학살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니까 바로 해당 부분을 약점으로 장군을 잡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쟁 전 소련의 손발을 자르는 삽질이었던 대숙청도 독일 국방군 방첩부(Abwehr)와 SD가 보기 드문 공동공작으로 촉발되었다는 연구도 있으며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장군의 블롬베르크-프뤼치 사건 1939년 8월에 폴란드에서 일어난 그라이비츠 사건, 1939년 11월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펜로 사건 등 국내외의 정치사건에는 대부분 하이드리히가 관여했다고 하며 하이드리히는 스스로 자신이 지배하는 SD와 보안경찰을 통합하고 국가보안본부를 세우고 수장 자리에 옳았으며 1941년 6월에는 독소전쟁에 앞서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의 토벌을 위해서 살인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을 조직해서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했으며 독일 국방군의 에두아르트 바그너와 소련 점령지역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업무 협약을 맺기도 하였고 1941년 7월에는 헤르만 괴링으로부터 유럽 전역에 걸친 유대인 문제 최종해결책을 건의받았고

NIKON | E3100 | Normal program | 5.8mm | ISO-100

이를 근거로 해서 1942년 1월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 학살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그리고 이때부터 폴란드 유대인 학살계획은 라인하르트 작전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당 영화의 배경의 원인이 되는 뮌헨 협정(Munich Conference,Münchner Abkommen)을 이해하고 가야 합니다. 뮌헨 협정은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프랑스 제3공화국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이탈리아 왕국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왕국 외무장관 갈레아초 치아노(무솔리니의 사위)가 모여서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을 찍은 사진으로 유명하고 그리고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히틀러는 1938년 3월 오스트리아에 우리 같은 민족 아니냐? 라는 식으로 독일이 국민 투표로 강제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그리고 이 와중에서 이탈리아에 있는 쥐트티롤 지방을 무솔리니가 오스트리아 병합을 묵인하는 대가로 쥐트티롤 지방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말 것을 히틀러에게 요구했었고 히틀러는 이를 받아드시고 그 때문에 독일의 병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히틀러가 가장 눈에 두고 있었던 독일인 인구가 가장 많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티(Sudety) 지방 즉 수데테란트을 두고 있었고 이 와중에서 히틀러가 수데테란트를 노리던 중 수데티 지방의 독일인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긴장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여기서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간에 상호 비방전이 이어졌고 체코슬로바키아는 5월 20일 예비군을 소집하고 국경 지대에 병력을 배치하게 되고 2개의 군사 동맹국 프랑스와 소련 중에서 가장 믿을 수가 있는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제는 체코슬로바키아 문제는 독일과의 양국만이 아니라 전 유럽의 주목을 받는 문제로 가게 되고 프랑스는 로카르노 조약상 군사 동맹국으로서 유사시 참전할 의무가 있었고 이에 따라 3월 14일 프랑스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 대사에게 조약 준수를 약속하는 동시에 영국에 입장을 물어보았으나 영국은 조약 준수만을 확인할 뿐 정작 참전 문제에는 영 미지근했었고 그리고 9월 13일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데테란트의 독일인들이 집단 봉기했으나 하루 만에 모두 진압이 되고 그와 동시에 히틀러는 군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감행하려고 했지만, 프랑스는 예비군 동원을 검토 및 영국에서도 긴장하게 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분위기가 조짐이 감지되자 9월 15일 당시 영국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가 독일의 뮌헨을 방문하여 히틀러와 회담을 하고 되고 이때 히틀러는 독일 주민이 과반수인 지역의 할양을 요구했고 체임벌린은 즉답하지 않고 영국으로 돌아가 9월 18일 프랑스의 양해를 구한 뒤 체코슬로바키아에 독일계 지역을 포기하라고 프랑스 정부에 압력을 넣게 되고 이때 체코슬로바키아는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국가 자체의 독립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리고 9월 22일 영국 총리였던 체임벌린이 직접 히틀러를 찾아가 영국과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가 영토 포기에 동의하고 있다며 앞서 히틀러가 제시한 요구에 대한 답변을 전해주게 되고 히틀러는 수데테란트 사태를 트집 잡아 전쟁을 일으켜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려고 했지만, 이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끼어들게 되고 그리고 뮌헨에서 회담이 개최되고 이것이 뮌헨 협정(Munich Conference, Münchner Abkommen)이고 여기서 수데테란트는 독일에 양도되고 그리고 톄신 지방은 폴란드에 루테니아와 남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양도되고 회담 참여국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안전과 독립을 보장하는데 합의를 하게 되고 그렇게 끝이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 나치의 지배에 놓이게 되고 사실상 무혈입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라인하르트 트리스탄 오이겐 하이드리히는 독일의 체코 지배를 정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며 유인원 작전(Operation Anthropoid)이라고 불리는 1942년 5월 27일 체코 망명정부와 영국군 SOE가 공모한 라인하르트 트리스탄 오이겐 하이드리히 암살계획을 짜게 되고 그리해서 영국에 망명 중이던 체코 정부로부터 요제프 가브첵 상사와 얀 쿠비시 중사 등 10명의 체코슬로바키아 군인이 선발되고 영국군 특수공작부 SOE로부터 암살에 필요한 훈련과 장비를 지급받았으며 해당 암살단은 영국공군기로 체코에 낙하해서 프라하로 잠입하게 되고 1942년 5월 27일 이른 아침부터 암살단은 트로야 다리 앞의 홀레쇼비체 거리로 향하는 커브길에서 프라하 성으로 출근하는 하이드리히의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가 약 오전 10시 반경에 하이드리히의 메르세데스 벤츠 오픈카가 도달했는데 여기서 하이드리히의 습관이었던 호위차량은 없는 상태에서 운전병만 권총을 가지고 있던 상태로 차량이 커브길에 접어들자 속도를 줄이려고 제동장치를 밟게 되고 가브첵이 차량 앞으로 뛰어들어서 숨겨둔 스텐 기관단총을 꺼내 쏘려고 했지만, 이때 탄환이 약실에 걸려 발사되지 않았고 결국 하이드리히는 운전병인 클라인에게 차를 멈추라고 명령함과 동시에 가브첵이 달아나자 클라인이 그 뒤를 쫓았가게 되고 혼자가 된 하이드리히에게 쿠비시 중사가 수류탄을 던졌고 쿠비시도 수류탄 파편을 맞고 상처를 입었고 하이드리히가 권총을 쏘면서 다가오면서 실패했고 결국은 암살단들은 달아나게 되고 이떄까지만 해도 하이드리히는 브로프카 병원으로 이송되어서 체코의 현지 의사들에게 수술을 받게 되지만 체코의사들의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은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하고 그리고 결국 독일에서 오는 의사에게 치료를 기다리는 사이에 지금에는 병원에서 항생제로 치료할 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항생제가 귀한 상태여서 6월 4일 오전 4시 30분에 패혈증에 의해서 죽게 되고 이에 대해서 라인하르트 트리 스탄 오이긴 하이드리히 암살범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끼고 잡으려고 하고 이때 당시 암살을 계획했던 멤버들중 하나인 카렐 쿠르다가 자신의 가족들이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해서 결국 나치에 직접 가서 동료를 밀고하게 되고 결국은 이 계획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체포 및 고문이 되고 그리고 결국은 시릴앤메토리오 교회에 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1942년 6월 17일에 시릴앤메토리오 교회(성 시릴과 성 메디오스 성당)에 나치군에 저항하지만 결국은 함께 있던 7명은 자 죽게 되고 하이드리히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체코의 리디체(Lidice)이라는 마을을 초토화하고 여기서도 모자라서 16세 이상 남자 196명을 모두 처형 여자와 아이들은 강제 수용소로 보내버렸고 이렇게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 105명의 아이 중 88명이 죽고 17명만이 살아남았고 그리고 레자키 라는 곳에서는 SOE의 라디오 장비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50명의 마을주민이 학살되었으며 리디체 마을처럼 마을 전체를 파괴하였고 여름까지 지속된 독일의 보복행위로 여기서 1,500명가량의 민족주의자, 전직장교, 지식인, 공산주의자 등으로 구성된 저항조직원들이 살해당하고 3천 명의 체코 유대인들을 테레지엔슈타트의 절멸 수용소에 가두는 동시에 베를린에서는 150명가량의 유대인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신자였던 카렐 쿠루다는 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고 잡혀서 사형되었다고 합니다.일단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이야기가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독일군이 독일어를 하지 않고 영어로 진행되어서 조금은 아쉽기도 했으며 솔직히 고증 쪽은 앤트로포이드(Anthropoid)쪽이 좋아 보였습니다. 나치 독일의 엄친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에 능했으며 또한 수영, 스키, 승마는 선수급이었고 특히 펜싱 실력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때 독일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될 정도였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펜싱을 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단 개인적으로 솔직히 재미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베드신을 넣은 것이 해당 영화의 옥에 티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앤트로포이드 영하 같은 경우 당시 복장들을 잘 고증해서 재미있게 본 영화였고 앤트로포이드 와 비교를 해보면 하이드리히를 암살을 하러 온 암살단들 쪽 부분이 강조했느냐 하이드리히 쪽을 강조했느냐 그리고 앤트로포이드 와 비교를 할 때에는 체코 레지스탕스 쪽 접선하는 쪽도 성별도 다르게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체코의 총독으로 있을 당시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경호차량 없이 오픈카로 종종 다녔다고 하며 이는 암살 이후 방탄설비를 갖추지 않은 오픈카를 타고 이동하다가 암살당한 것을 두고, 멍청한 짓이라고 놀리는 등 나치당 최상층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하며 히틀러는 이후 점령지역의 고위관료들에 대한 경비수준을 상향시켰다고 합니다.
하이드리히가 사망하자 프라하 성의 명예의 궁전에 안치된 하이드리히의 관에 꽃과 화환을 바치려고 보호령 전 지역의 당국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하이드리히의 관은 카를 다리 위의 궁전에서 중앙 철도역으로 옮겨졌고 친위대 상급자인 쿠르트 달뤼게는 하이드리히의 관이 베를린으로 운구될 때 동행했으며 하이드리히의 장례 절차는 베를린에 신설된 제국 수상 관저에서 치러졌고 배경 음악은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지크프리트의 라인 기행이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해당 영화에서도 해당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1942년 6월 9일 히틀러는 죽은 하이드리히를 찬양하면서 훈장을 수여했으며 특히 하이드리히의 두 어린 자녀를 만났다고 합니다. 훈장은 1942년 2월 11일에 만들어진 제3제국 최고 영예의 훈장이었으며 그리고 히틀러는 하이드리히에게 훈장을 주면서 추모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죽은 이에게 몇 가지 할 말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훌륭한 국가사회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고. 독일 제국 사상 가장 강력한 보호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제국의 모든 적의 가장 강력한 적수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국을 방어하고 지켜내기 위해서 순교자로서 쓰러져갔습니다. 당의 지도자이자 독일 제국의 지도자로서 나는 친애하는 동지 하이드리히 당신에게 최고 영예의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보답을 드립니다.

당신은 당 동지 프리츠 토드 이후 두 번째로 이 상을 받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이드리히 사망 보복으로 마을을 소탕하면서 연합군의 첩보작전에 큰 차질이 생겼다고 하며 실제로 본래 에드바르트 베네스(Edvard Beneš), 체코 망명정부 대통령은 하이드리히 이후에도 나치 점령정부에서 교육 및 국민계몽 장관을 맡은 전직 체코군 장교 엠마누엘 모라베치(Emanuel Moravec)와 하이드리히의 후임자, 카를 헤르만 프랑크(Karl Hermann Frank)를 암살할 생각이었지만 하이드리히 암살로 말미암은 독일의 보복으로 말미암아 점령지 주민들이 겁을 먹고 협력하기를 극도로 꺼리자 더 이상의 암살은 감히 기도하지 못했다고 하며 그래서 영국 첩보부는 방침을 암살에서 납치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일단 하이드리히가 암살이 된 원인은 아마도 철저한 시간관념에서 온 습관 그리고 자만이 아니었을까 하면 나쁜 인간은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당 글에 첨부된 사진은 위키 백과에서 가져왔으면 해당 저작권 표기 방식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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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Favicon of https://bubleprice.net 버블프라이스 2019.10.14 06:40 신고

    오늘도 포스트를 잘 읽고 공감 누르고 갑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래요

  2. Favicon of https://jongamk.tistory.com 핑구야 날자 2019.10.14 06:55 신고

    덕분에 영화 한 편을 보는듯한 내용으로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wezard4u.tistory.com Sakai 2019.10.15 00:32 신고

      해당 영화를 이해할려고 하면 이게 역사 공부 가 조금 필요하더라고요.

  3.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공수래공수거 2019.10.14 07:44 신고

    보지 못한 영화를 소개해 주셔서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보고 싶군요^^

  4. Favicon of https://kangdante.tistory.com kangdante 2019.10.14 09:05 신고

    영화가 독특한 소재인 것 같아요
    볼만한 영화겠어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