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꾸는 파랑새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영화인 Sarajevo(사라예보)에 대해 글을 적어 보겠습니다. 해당 영화는 사라예보사건(Assassination of Archduke Franz Ferdinand of Austria,サラエボ事件)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일단 사라예보사건(Assassination of Archduke Franz Ferdinand of Austria,サラエボ事件)이라는 것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과 부인 조피 폰 초테크가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 라는 세르비아 민족주의 조직에 있던 19세의 대학생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동료 5명이 같이 참여)에 의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과 부인 조피 폰 초테크 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사건을 말하며 여기서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일본에서 サラエボ事件이라고 부르는 것이 번역되어 한국에서 이렇게 부르고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사라예보사건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한 제1차 세계 대전의 기폭제 역할을 한 사건입니다.

해당 사건은 오스만 제국이 1878년 독일과의 베를린 조약으로 후퇴하면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방이 떨어져 나갔으며 세르비아가 독립했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세르비아 왕국에서는 민족주의 열기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해당 민족주의 열기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주민에게 전달되었고 해당 사건은 1914년 6월 28일에 발생을 했고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태자비 조피는 9시 20분 사라예보 역에 도착 그 이후 황태자는 오스카어 포티오레크(Oskar Potiorek) 보스니아 총독과 함께 하라히 중위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승차하게 되고 이때 가브릴로 프린치프 등 검은 손 단원들도 권총과 수류탄, 그리고 자살용 청산가리를 챙겨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 배치되었으며 황태자 부부를 살해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리고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아내인 조피와 굳이 동행한 것은 프란츠 본인의 강력한 의지였으며 왕족 출신이 아니었던 조피는 엄격한 귀천 상혼 제도로 말미암아 오스트리아 황실 내에서 큰 차별을 받아 왔었고 프란츠는 이런 아내의 정치적 위신을 높여주기 위해서 조피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고 그리고 해당 참관 날짜가 하필 결혼기념일이었다고 합니다.

즉 황태자 부부는 결혼기념일에 부부가 죽은 사건입니다. 그리고 황태자 부부가 아펠 강둑에 도착했을 때 첫 번째 단원인 무하메드 메흐메드바시치(Muhamed Mehmedbašić)는 황태자 부부를 암살에 실패 그리고 10시 10분경 두 번째 단원인 네델코 차브리노비치(Недељко Чабриновић)가 수류탄을 던졌지만, 다행히 차를 맞고 튕겨나가서 암살을 피할 수 있었으며

해당 수류탄 폭발로 수행원 2명과 구경꾼 10명이 다쳤으며 네델코 차브리노비치는 암살에 실패하자 자살하려고 바로 독약을 삼키고 나서 옆의 강으로 뛰어들었는데 독약은 유통기한이 지나서 효과가 없었고 자살하려고 뛰어내렸던 강은 말라서 깊이가 1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아서 생포되고 자백하게 되고 나머지 단원들은 폭탄 투척이 실패하자 암살을 포기하게 되고 시청에서 황태자는 이 암살시도를 두고 페힘 추르치치(Fehim Čurčić) 사라예보 시장에게 폭탄으로 환영받았다고 분노했지만, 아내 조피가 말려서 그만두었다고 하며 이후 영접행사가 끝나고 그와 함께 탔던 포티오레크 총독은 빨리 군사지역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고

여기서 페르디난트 대공이 폭탄테러로 다친 수행원의 위문을 위해서 그들이 입원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며 주변에서는 말렸지만, 프란츠는 해당 병원으로 가게 되고 해당 행동은 암살시도로 말미암아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해당 행동이 오히려 프란츠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고 암살을 피하고자 지름길로 가기로 했지만 정작 운전기사 하라히 중위에게는 지름길로 가야 한다는 말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며 운전기사는 예정된 길로 차를 몰았고 포티오레크 장군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운전기사에게 소리쳤지만. 밀랴츠카(Miljacka) 강의 라틴 다리에서는 반드시 서행을 해야 하는 주변 환경에 후진하던 차에 멈추게 되고 이때 암살에 참여하지 않은 프린치프가 하필 자기가 자주 가던 모리츠 실러(Moritz Schiller) 카페 주변을 꺼리다가 자신의 눈앞에서 황태자 부부가 탄 자동차가 나타나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미리 준비해뒀던 FN M1910 자동권총을 꺼내서 자동차 앞에 뛰어들어서 황태자 부부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고 결국 황태자 부부는 사망하게 되고 결국 이것인 제1차 세계대전의 기폭제가 되었고 결국은 수천만 명의 목숨이 죽어가는 처참한 전쟁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총알은 황태자를 향해서 두 번째 총알은 그의 부인인 조피를 맞추었고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380ACP를 막을 수 있는 실크 방탄조끼를 입고 있지만, 총알이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목에 명중해 경동맥을 끊어버려서 암살 직후 황태자 부부는 시청으로 옮겨졌고 운전기사 하라히 중위의 증언으로는 프란츠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Sopherl! Sopherl! Stirb nicht! Bleib' am Leben für unsere Kinder!(조피, 조피 죽으면 안 되오!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주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해당 부분이 영화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조피는 시청에서 숨을 거두었고 프란츠 황태자도 몇분 뒤에 숨을 거두었으며 정말 우연이라는 5개의 우연 중 한 개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면 아마도 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더라도 늦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과 부인 조피 폰 초테크 5분전 마지막 모습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과 부인 조피 폰 초테크 5분전 마지막 모습

그리고 가브릴로 프린치프(Гаврило Принцип) 교도소에서도 사람 취급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수없이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세르비아계 수감자들도 폭행에 가담했다고 하며 이유는 저 인간 때문에 전쟁 일어나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조국 세르비아가 무참히 점령당했으며 1차 세계대전 중에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불가리아에 점령당하고 독기가 오른 오스트리아군들은 세르비아인들에게 보복학살이 있었다고 하며 그리고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자신 때문에 전 세계의 수백만 명이 전쟁터로 죽어가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테레진슈타트의 교도소에서 복역했고 여기서 오스트리아 정부도 가브릴로를 사형시키고 싶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의 법에서는 만 20세가 넘어야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수 있었는데 가브릴로는 만 20세가 되는 남은 기간은 27일이 모자라서 미성년자였던 관계로 사형을 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감형 사유를 적용하고 징역 20년이 확정되었다고 하며 그리고 당시 세르비아는 붕괴했고 세르비아 전 국토가 점령을 당하는 중이었고 이 소식을 접한 가브릴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가브릴로는 1918년 교도소 안에서 유대인 의사의 치료를 받다가 병사했다고 하며

그리고 또 다른 범인 중 한 명인 바소 추브릴로비치(Васо Чубриловић)는 16년형을 선고받고 1차 대전이 끝나고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들어서면서 석방되고 1939년 베오그라드 대학 교수를 지냈다가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 졌지만 살아남았고 여기서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유고연방에서는 영웅이 되었으며 유고슬라비아 정치인으로 농업장관과 삼림장관까지 했으며 1990년 6월 11일 93살에 병사했고 범인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으며 바소 추브릴로비치(Васо Чубриловић) 다행인지 조국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는 것은 못 보고 죽었습니다.

해당 영화는 여기서 황태자 부부가 살해당하고 진실을 파헤치던 한 명예 판사 와 그리고 세르비아 여자 와 사랑(겉으로는 사랑이지만 세르비아 여자는 프랑스 남편이 있었음) 그리고 해당 사건을 파헤치면서 진행이 되는 영화이면 그 과정에서 진실을 파헤치던 판사는 유대인이었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도 은근히 인종차별이 당하고 있었고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국가로부터 극비 인물로 의사와의 갈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주연:플로리안 타이히트마이스터, 하이노 페르히,멜리카 포루탄 이며 일단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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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Karl Trös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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